심리학자 칼 로저스(Carl Rogers)는 인간 중심 접근(Client-Centered Approach)을 통해 심리치료뿐만 아니라 교육, 상담, 사회복지 분야에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의 이론은 인간을 수동적인 존재가 아닌, 스스로 성장하고 변화할 수 있는 능동적인 존재로 바라봅니다. 이러한 관점은 사회복지 실천에 있어 인간 존엄성과 자기결정권을 중시하는 가치와 깊게 연결됩니다. 이번 글에서는 로저스의 현상학이론, '완전히 기능하는 사람'의 개념, 인간 발달과 사회현상에 대한 통찰을 기반으로 사회복지실천 전략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1. 로저스의 현상학이론
로저스의 이론은 ‘현상학적 접근’(Phenomenological Approach)을 바탕으로 합니다. 이는 인간의 주관적인 경험, 즉 개인이 세상을 어떻게 지각하고 해석하는지를 중심으로 이해하려는 입장입니다. 그는 인간의 행동을 객관적인 사실이나 외부 자극에 의해 설명하기보다는, 그 사람이 느끼고 해석한 내면의 세계에 따라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러한 관점은 사회복지실천에서도 중요합니다. 클라이언트의 문제를 전문가의 시각에서 단정 짓기보다, 그들의 삶의 맥락과 경험 속에서 바라보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노숙인의 경우 단순히 ‘주거가 없는 사람’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겪어온 관계 단절, 사회적 낙인, 자존감의 손상 등을 함께 고려해야 합니다. 이는 진정한 이해와 공감을 바탕으로 한 개입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2. 완전히 기능하는 사람(Fully Functioning Person)
로저스는 건강하고 자아실현적인 사람을 '완전히 기능하는 사람'이라고 불렀습니다. ‘완전히 기능하는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 경험에 대한 개방성(Open to Experience): 자신의 감정과 경험을 왜곡 없이 받아들이며, 방어적이지 않습니다.
- 실존적 삶(Living in the Moment): 과거나 미래에 매몰되지 않고 현재를 중심으로 살아갑니다.
- 유기체적 신뢰(Organismic Trusting): 자신의 내면 감각과 직관을 신뢰하며 의사결정을 합니다.
- 자유로운 선택과 책임: 삶에서의 선택을 스스로 결정하고 그 결과에 책임을 집니다.
- 창의성과 적응력: 유연하게 환경에 적응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합니다.
사회복지 실천에서 이 개념은 클라이언트를 ‘문제 있는 사람’이 아니라, 자아실현의 가능성을 가진 존재로 바라보게 합니다. 이는 클라이언트 중심 실천(Client-Centered Practice)의 철학적 기초가 되며, 존중, 공감, 진정성의 실천적 태도를 요구합니다.
3. 인간발달과 사회현상에 대한 통찰
로저스는 인간 발달을 ‘자기실현’의 과정으로 보았습니다. 인간은 타고난 성장 경향(Actualizing Tendency)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통해 점차 자율적이고 성숙한 존재로 발달합니다. 그러나 사회적 조건이나 타인의 평가로 인해 자기개념(Self-concept)과 실제 경험 사이에 불일치가 생기면 심리적 갈등이 발생합니다.
현대 사회는 경쟁 중심, 성과 중심의 구조 속에서 개인의 자율성과 내면의 목소리를 억누르기 쉽습니다. 청소년의 자살률 증가, 정신질환의 확산, 소외와 고립 현상 등은 이러한 ‘경험의 왜곡’이 사회적 차원에서 일어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로저스 이론은 이러한 사회적 현상에 대해 개인의 내면에 귀 기울이고, 진정한 자기와의 연결 회복을 통해 회복 가능성을 모색하게 합니다.
4. 사회복지실천에서의 적용
로저스의 이론은 다양한 사회복지 현장에서 실천 전략으로 적용될 수 있습니다.
1) 클라이언트 중심 실천
클라이언트를 전문가가 변화시켜야 할 대상으로 보지 않고, 스스로 변화할 수 있는 존재로 존중합니다. 복지사는 촉진자(Facilitator)로서 공감적 이해, 진정성, 무조건적인 긍정적 존중(Unconditional Positive Regard)을 통해 변화의 환경을 조성합니다.
2) 자아강화 중심의 개입
클라이언트가 자신의 감정과 욕구를 정확히 인식하고, 이를 존중하는 과정을 통해 자기효능감과 자존감을 회복하도록 돕습니다. 이는 청소년, 노인, 정신건강 클라이언트 등 다양한 대상에게 효과적입니다.
3) 참여적, 관계 중심의 서비스
로저스의 이론은 복지 실천을 단순히 문제 해결의 도구가 아니라 ‘치유적 관계’의 과정으로 바라보게 합니다. 이를 통해 클라이언트는 사회적 관계에서의 긍정적 경험을 회복하고, 다시 사회로 나아갈 힘을 얻게 됩니다.
4) 조직과 정책 차원의 적용
복지기관의 문화 또한 클라이언트 중심적이어야 하며, 종사자 간에도 공감과 존중의 분위기를 조성해야 합니다. 이는 서비스의 질 향상과 직무 만족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줍니다.
결론
칼 로저스의 현상학이론은 단지 심리치료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인간을 바라보는 철학과 실천의 방향을 제시해줍니다. 인간은 변화할 수 있으며, 그 변화는 타인의 진정한 공감과 존중 속에서 일어납니다. 사회복지실천에서 로저스 이론을 적용한다는 것은 단순히 기술을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믿음과 태도를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 믿음은 사회적 약자를 포함한 모두가 ‘완전히 기능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품고 있습니다.